가십의 중심, 확인되지 않은 여러 소문을 몰고 다니는,
선망과 질시, 동경이 뒤섞인 시선을 한 몸에 독차지하는.
'튀려고 저런다'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, 오로지 하루하루를 살아있는 것처럼 신나게 살아내는 것에 온 관심이 쏠려있는.
김고은이 연기한 불어불문학과 구재희는 그런 여자이다.
뭐든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 그녀의 눈에 계속 들어오는 동기생이 있다.
아직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완벽한 이중생활을 하는, 흥수.
둘은 꽤 죽이 잘 맞아서 (아마도 동류의 무리가 없는 것 내지는 따로 노는 외로움을 술로 달래는)
줄곧 술집과 클럽을 전전한다.
재희가 입은 저 옷은 다시 봐도 예쁘다.
의상 외에도 소품 하나하나가 정감가고 예쁘다.
재희는 감정에도 솔직해서, 연애도 겁 먹지 않고 일단 아낌없이 표현하고 본다.
그리고는 매번 다른 방식으로 깨지고 다치고, 그리고 다음 관계를 시작한다.
그 과정을 모두 (이제는 동거남이 된) 흥수가 지켜보고, 또 곁에서 지지해준다.
그런데 사실 이 모든 플롯은 동서양 여자들의 로망으로 알려진 'Gay BF'를 구현한 것 같아서 현실감은 없었다.
여하튼 재희의 자취방은 흥수와 재희에게 있어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따스하게 안아주는, 엄마 품보다도 넓은 피난처이다. 조명이 밝지도, 정돈되어 있지도 않고 때로는 술병이 굴러다닐 때도 있지만, 저 안에서 저 이들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세상의 눈은 완벽히 차단된다.
넓지도 호화롭지도 않은 집이지만, 저 집을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뻗어나간다. 역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수적이다.
새된 젊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날카롭게 느껴지니
재희와 흥수가 아무리 성애를 초월한(?)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지언정
처음 20대를 맞아보는 둘 사이에는 방황과 갈등도 생겨난다.
사랑을 눈 앞에 두고 있음에도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기에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흥수도,
혼자만의 싸움이 벌어지는 중이다.
자유인 재희는 서서히 사회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 걸어, 사회인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.
그리고 그 끝에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 간다. 그것이 종착점일지는 아무도 모른다.
오사구 (오늘만 사는 구재희)의 또 다른 도전인 결혼식을 베스트 프렌드인 흥수가 흥겹게 장식해준다.
(마치 흥수가 신랑인 것 같다)
청춘을 앓으면서 얻은 우정을 이어나가는 것으로
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선언하는 것만 같다.
*
이래야 한다, 저래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젊음을 불사른 재희와 흥수의 대학시절이 유쾌하고 청량하게 묘사되었다.
그 생활도, 그들의 관계도 솔직히 허구와 미화가 가득한 것 같지만, 마음 속에 어떤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였다.
- 20대를 위한 동화 같기도 하다.
타인의 잣대와 욕구와 불안에 휘둘리는 모두이지만
따뜻한 오후 햇빛이 희미하게 들어오고, 밤에는 은은한 불에 의지하는 재희의 자취방만한 자유와 평안은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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